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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체 글 (210)
outopos
나미의 , 80년대에 나왔으니 옛날 노래다. 대학 일학년 때 음악을 모르는 친구들도 슬픈인연을 줄기차게 들었다. 나미, 이 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당시 주워들었던 얘기로는 고생을 많이 했다, 정도다. 가창력이 별로다, 이런 얘기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이 분이 미국에서(캐나다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룹으로 냈던 음반을 들어보면 사라 본과 비슷한 목소리였던 것 같다. 영어로 부른 노래도 있고, 한국어로 부른 노래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가창력은 탁월했던 것 같다. 그 관점에서 보면 너무 '기교를 부려' 잘 부른다고나 할까. 좌우간 , 이 노래는 나중에 리바이벌도 많이 됐던 것으로 아는데, 나미, 이 분의 버전에 비하면 미안한 얘기지만, 따라잡을 수가 없다, 고 생각한다. 나미..
한없이 낮은 자세, 이게 가능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를 낮춰도 어딘가에 더 낮은 이가 있을 텐데 아무리 쭈그러들어도 더 낮은 이가 있을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나를 낮추는’ 윤리적 태도는 어느 지점에서 오만방자하게 비춰질 수 있다. 오만방자함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낮은 이’들과 눈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하여 관건은 낮추고자 하는 의지에 있지 않을까 싶다. 석가모니나 예수가 그리 했는지 역사적 팩트를 모르니 알 수 없지만 그 ‘지향’은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좀 웃긴 얘기지만 ‘무한히’ 낮다는 건 이미 높다는 뜻이다. ‘저 아래’가 있으니까. 그러나 ‘저 아래’는 도대체 어디를 얘기하는 것일까. 제로가 있으면 마이너스도 있고, 마이너스에도 무한대로 수..
술마시면서 안주삼아 그런 얘길 가끔 했다. 김대중은 로고스가 강하고 노무현은 파토스가 쎄고 문재인은 에토스적 인간이다, 이런. 따지고 보면 로고스가 없는 인간은 파토스도 없고 에토스도 없다.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인간이 열정만 있다면 얼마나 후질까, 비합리적인 인간의 에토스는 얼마나 끔찍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 로고스는 인간의 기본 덕목이긴 하다. 용어, 개념 이런 걸로 인간을 범주화하고 싶어 하는 편의적 사고 때문에 이런 이상한 구분을 했던 것 같은데 이게 서로 넘나드는 것이어서 사실 유치한 규정이기는 하다. 이 범주 구분에 따르면 나는 에토스적 인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왜냐면 로고스도 약하고 파토스도 없어서다. 뭐 때로는 로고스적이기도 하고, 또 어쩔 때는 드물지만 파토스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여든이 다 된 어머니에게 문안 인사를 드릴 때마다 되돌아오는 말은, “아가, 팔십년을 썼으니 고장 나는 게 당연하지 않겄냐”다. 아프고 시리고 저리고 온몸이 쑤셔 오는데도 도리가 없다. 그러고 보면 유기체는 참으로 한심한 존재다. 쇳덩어리는 수천 년을 써도, 잘만 쓰면 녹슬지 않고 천년만년 가니 말이다. 유기체와 무기체, 참 다르다. 18세기 프랑스의 생리학자 르 카, 이름이 좀 긴데 퍼스트 네임은 클로드 니콜라다. 그러니까 Claude-Nicolas Le Cat. 이 분은 외과 의사였는데, 말하자면 임상의이면서 해부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생리학자이기도 하다. 책도 많이 썼는데, 의학책만 쓴 게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소위 ‘존재론’이나 ‘감각론’ 같은 철학책도 여러 권 썼다.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해 거의 ..
인류가 피할 수 없었던 숙명과도 같은 위기, 늘 있었다. 전쟁과 전염병이다. 어느 세대나 한번쯤 둘 중 하나는 겪게 마련인데, 재수 없으면 둘 다 겪고, 운이 좋으면 둘 중 하나만 겪고, 운이 아주 좋으면 둘 다 피하는 경우도 있다. 둘 다 겪지 않은 세대는 그야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한 세대라고나 할까... 베이비부머, 그러니까 전후세대인데, 어릴 적 고생했으나(6.25세대가 부모였으니) 취직도 잘됐고 요즘 청년세대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살 수 있었던 그런 세대다. 물론 부모를 공양해야 했고 자식을 부양해야 했으니 마냥 운이 좋았던 세대는 아니다. 게다가 정치적 격변기를 관통해 온 세대다. 말이 옆으로 샜지만 어쨌든, 이 운 좋은 세대, 혹은 억수로 운 없는 세대도 전염병을 겪고 있다. 제일 안쓰러..
오래 전에 마르셀 뒤샹 평전을 사놓고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틈틈이 읽다보니 저 유명한 샘(Fountaine)에 관한 내용이 나와 생각을 더듬어 본다. 베르나르 마르카데의 , 뒤샹 평전으로는 분량이나 자료의 방대함에서 다른 평전들을 압도한다. 뭐 뒤샹 전기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티리 드 뒤브의 에 실린 아티클 한 편이 이 사건을 소상히 다루고 있어 예전에 읽어본 적이 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김광우 선생이 쓴 뒤샹 전기도 있어 국문판으로는 참고할 만하다. 좌우간, 이 오브제는
에 등장하는 인물 스완(주인공 마르셀이 닮고 싶어했던 인물, 결국 질투심에 눈이 멀어 오데뜨라는 고급 창녀와 결혼하면서 딜레탕트로 전락하는 고상한 인문주의자)은 신문을 경멸한다. 신문은 하찮은 것에 주의력을 돌리게 하며, 본질적인 것이 씌어있는 책을 한평생 서너권밖에 읽지 않는 우리로 하여금 하잘 것 없는 내용을 읽는데 시간을 낭비하도록 하기 때문이라는 것. 저녁에 잠깐 인터넷 신문 몇 군데를 살펴보니 정말 그렇다. 조선일보 인터넷 판의 머릿기사는 온통 서태지, 이지아 관련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고, 한겨레 판은 엄기영 후보쪽 불법 선거운동, 오마이뉴스도 같은 내용이 올라와 있다. 프레시안은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가고, 다른 신문들은 들어가보지도 않았다. 한심하여 르몽드 판을 보니 시리아 정부..
데이브 히키의 을 시간 나는대로 틈틈이 읽어 보았다. 역자인 박대정선생의 번역이 깔끔하다. 차분히 정독할 여유가 없는 관계로 부분부분 읽은 셈이지만, 거칠게나마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본다. 핵심적인 의제는 '아름다움'의 문제에 걸려있다. 저자는 '무엇이 아름다운가?', 혹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모두가 저마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있으므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칸트의 후예이다. 하지만 칸트가 아름다움을 '무관심', '무개념', '무목적성' 등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반면 히키는 그런 '순수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아름다움은 욕망, 쾌락, 이념, 도덕 등 아주 복잡한 다른 범주들과 얽혀 있다. 어쨌든 이런 복합적인 측면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이 생겨나고..
지난 주에 잠깐 서점에 들렀다가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 있어 대충 훑어보았는데, 내용 파악을 완전히 하지는 못했지만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던 거라서 간단히 정리해 본다. , "육식주의를 해부한다"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우리에게 동물은 어떤 존재인가', 이런 질문이 될 것이다. 나는 육식주의자, 그 중에서도 아주 고기를 밝히는 육식주의자이기 때문에, 호, 이건 나를 해부하는 책이로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나는 돼지도 먹고, 소는 더 잘 먹고, 개도 가끔 먹기 때문에 이 제목은 정확히 나와 맞지는 않다. 어쨌든 육식주의를 아무 거리낌 없이, 반성 없이 추구하는 인류 문명사의 치부를 건드리고 있는 책인데, 결론은 좀 답답하다. 육식주의를 포기하고 채식주의를 하자고 주장하는 책은 아니..
한주 한주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정신 없는 와중에 마침 짬이 나서 한성필 개인전 를 보러갔다. 아라리오 갤러리, 처음 가보았는데 공간이 괜찮다. 이번 전시도 프로젝트의 연장인데, 조금씩 진화해나가고 있다. 이전 작업도 괜찮긴 하지만 뭐랄까, 레디메이드적인 요소도 있고, 좀 단순했었는데 이번에는 좀 복잡해졌다. 잠깐 대화를 나누어보니 다시점을 도입한 모양이다. 이전 작업들처럼 '눈속임'회화를 단지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점을 달리 하여 촬영한 각 부분을 정교하게 붙여놓았다. 한성필씨는 큐비즘적 요소를 사진에 도입했다는데,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워낙 정교하다보니 설명을 듣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렵다. 하긴 그렇게 흔적을 덮어버리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흥미로운 부분은 베를..
빤한 얘기지만 인간은 두 가지 삶을 동시에 산다. 하나는 세속적인 삶, 말하자면 걍 통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대로 사는 삶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질투하고, 뭐 그렇게 사는 삶, 누가 내 뺨 때리면 나도 가서 때리면서 사는 삶, 제 자식 좋은 대학보내려고 학원보내고, 학원비 벌기 위해 엄마가 아르바이트하는 그런 삶, 작품 팔아 생계비에 보태려고 싫지만 잘 팔릴 것 같은 사진 찍는 작가들의 삶, 나처럼 하기 싫은 강의도 하고 쓰기 싫은 원고도 가끔씩 쓰면서 사는 그런 삶, 그러면서 지치고 피곤하면 술이나 퍼마시면서 사는 그런 삶, 에라이 더러워서 못 살겠다 하면서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런 삶이다. 근데 그렇게만 산다면 어디 사는 맛이 있나, 하여 인간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동시에..
일과를 마치고 다음 날 별 일 없으면 술 한잔 하며 음악 듣거나 책보거나 하는 게 내 인생의 낙이다. 그러다보니 자연 혼자 마시는 날이 많은데, 블로그에 올리는 글의 태반이 술 한잔씩 하다가 쓰는 것들이다. 이게 좋은 이유는 강제성이 있어서 생각을 억지로 쥐어짜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문장을 공들여 다듬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말 그대로 리버럴하게 써도 된다는 것이다. 좌우간 요즘도 생각이 막히거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거나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싶으면 가끔씩 김우창 선생의 문집을 들춰본다. “심미적 언어 구사의 힘이야말로 단편화된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전인격적 수련을, 그리고 기계적인 적용의 기술이 아니라 변하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창조적 지성과 감성을 증거해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