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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paixaube 2020. 12. 15. 22:58

인류가 피할 수 없었던 숙명과도 같은 위기, 늘 있었다. 전쟁과 전염병이다. 어느 세대나 한번쯤 둘 중 하나는 겪게 마련인데, 재수 없으면 둘 다 겪고, 운이 좋으면 둘 중 하나만 겪고, 운이 아주 좋으면 둘 다 피하는 경우도 있다. 둘 다 겪지 않은 세대는 그야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한 세대라고나 할까...

베이비부머, 그러니까 전후세대인데, 어릴 적 고생했으나(6.25세대가 부모였으니) 취직도 잘됐고 요즘 청년세대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살 수 있었던 그런 세대다. 물론 부모를 공양해야 했고 자식을 부양해야 했으니 마냥 운이 좋았던 세대는 아니다. 게다가 정치적 격변기를 관통해 온 세대다. 말이 옆으로 샜지만 어쨌든, 이 운 좋은 세대, 혹은 억수로 운 없는 세대도 전염병을 겪고 있다. 제일 안쓰러운 세대는 전전세대, 그러니까 나의 부모 세대다. 어릴 적 전쟁으로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모든 것을 경험했고, 그래서 다른 끔찍한 상황에서도 초연할 수 있었던 그런 세대가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전쟁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의학의 눈부신 성장 덕에 코로나 백신이 조만간 보급되겠지만 전염병은 인류의 존속을 위협할 만큼 위험하다. 원래 소설이었지만 나중에 톰 크루즈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우주전쟁>에서 지구를 침공했던 외계인들을 박멸하여 인류를 위기에서 구했던 존재는 다름 아닌 바이러스였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바이러스가 인류의 구원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는 얘기는 지금은 엉터리지만 닥쳐올 미래는 점쟁이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른다.

코로나 이후 많은 변화가 생겨날 것이라고들 얘기하는데, 아마 그럴 것이다. 그 여러 가지 변화 중 하나를 말하자면 식문화다. 실상 전염병이 식문화에 미친 영향이 대단히 크다. 코로나가 그렇듯이 중세 유럽을 초토화시켰던 페스트도 식문화의 변화를 야기했다. 코로나는 비말 전파라고 알려져 있는데, 말하자면 침이 섞이면 백프로라는 얘기다. 유럽 사람들이 개인접시에다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것도 페스트 이후다. 그럼 우리는? 전염병을 겪지 않아서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침 섞어 가며 먹나? 그렇지는 않다. 본래 한국의 식문화는 그렇지 않았다. 술잔 돌리고 여러 사람의 침이 섞이는 찌개를 함께 먹는 그런 문화는 실상 듣보잡에 가깝다. 언젠가부터 갑자기 생겨난 이상한 문화인데 그걸 고집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코로나 덕분에 그런 기이했던문화를 배척할 명분이 생겼다고나 할까. 침은 함부로 섞는 물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