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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강용석 (6)
outopos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과 포토 저널리즘의 관계에 대한 세미나가 열린 모양이다. 가보지는 못하고 소개기사만 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상세히는 알지 못하겠지만 대강 짐작은 간다.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한 세미나가 고은에서 계속 진행 중이고 이번이 2회째인데, 사실 구도는 뻔하다. 이번 주제도 판이 좀 보인다. 아무리 복잡하고 많은 얘기가 오갔을지라도 요지는 쉽게 정리될 수 있다. 어쩌면 너무 속 보이는 것 같아 적나라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있는, 그러니까 약간 엉거주춤한 그런 상태인 것 같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포토 저널리즘의 구분은 쉽지 않고 서로 넘나든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야 다큐멘터리 사진도 넓어진다는 것이 송수정 선생의 요지인 것 같다.(잡지에 실린 기사를 읽어보니까 그런 듯) 원론적으..
올해 동강사진상은 강용석에게 돌아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가라 일단 반갑다. 수상의 근거는 10년 만의 개인전 인데, 전시 한번 했다고 상을 준다는 것이 의아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전시 하나에, 그것도 10년 만에 전시를 연 ‘게으른’ 작가에게 일년에 한번 주는 상을 준단 말인가! 그런데 동강사진상은 다른 작가지원 제도와 달리 한 해 동안의 활동만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4-5년간의 작업과 성실함, 이런 것을 복합적으로 계산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하다. 그간 개인전 한번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내가 알기로 강용석이 이 작업을 시작한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이런 작업 하나를 완성도 있는 형태로 마무리하려..
강용석의 전, 이후 10년 만의 전시이다. 한 작가가 10년 동안 전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형편이 어찌 됐든 부끄러운 일이다. 작업을 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테고, 작업은 해왔지만 전시를 할 형편이 안 되었던 경우가 있을 것이다. 작업을 해왔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전은 8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분단의 문제에 천착해 온 강용석의 작업 여정의 한 자락에 속한다. 1984년의 동두천 기념사진, 1998년의 매향리, 그 중간에 민통선 작업이 있지만 전시하지는 않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비교적 명료하다. 전국 각지에 퍼져있는 한국전쟁 기념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본래의 역할을..
강용석의 은 여러 모로 의미 있는 작업인데,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우선 매향리라는 분단의 상징적인 장소를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보고 이를 논의의 수면 위로 건져 올렸다는 점, 이것이 첫 번째다. 그런데 그의 매향리 작업이 갖는 의미는 딱 이 수위에서만 거론되었던 것으로 안다. 오히려 그가 중요하게 여겼던 문제는 사진의 톤이었다. 콘트라스트를 극도로 줄인 중성 톤, 흑과 백의 중간 단계, 약간 백색에 기운 듯한 중성 톤, 이것이 그에게는 의미심장한 문제였고, 자주 그 점에 대해 얘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그가 제안한 중성 톤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 사람은 아쉽게도 거의 없는 듯하다. 그래서 그의 매향리 작업은 ‘매향리’라는 지역이 지닌 한국현대사의 문제..
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에서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상황”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했다. 발제문은 분량이 너무 길어 올리지 않고 간략하게 요점만 정리해 본다. 첫째, 다큐멘터리 사진은 장르가 아니라 스타일 혹은 형식이다. 둘째 다큐멘터리는 1930년대에 등장한 역사적 개념이자 모순적인 개념, 하여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표현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적절한 용어이다. 하지만 이미 이 표현 자체가 일반화되어 있으므로 사용은 하되 개념 정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셋째,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진 기록물, 즉 자료사진과 다르며 저널리즘 사진과도 다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사진의 역사 속에서 늘 아방가르드의 위치에 서있었으며 사진의 문법과 형식, 이런 측면에서 시각적 혁신을 주도해 왔다. 1930년대..
오랜만에 맞는 망중한, 금방 끝나겠지. 한달 지난 월간지를 뒤적이다(잡지를 잘 보지 않는 편이라 잊고 있었다. 시간도 없었고) 월간사진 6월호에 실린 강용석 관련 기사를 읽었다. 이상엽이 대담자로 구술을 정리하였다. 강용석 선생과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눠보지 못했다. 젊었을 때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에게 사진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처럼 진지하게 잘 가르치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여 그는 빼도박도 못하는 선생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상엽씨는 '선비'라고 표현했더라마는 글쎄, 그럴수도 있겠고, 아닐수도 있겠고. 좌우간 그에게 수학했던 이들은 작가정신에 투철하여 지금도 썩 괜찮은 작업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