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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paixaube 2020. 12. 16. 01:01

여든이 다 된 어머니에게 문안 인사를 드릴 때마다 되돌아오는 말은, “아가, 팔십년을 썼으니 고장 나는 게 당연하지 않겄냐. 아프고 시리고 저리고 온몸이 쑤셔 오는데도 도리가 없다. 그러고 보면 유기체는 참으로 한심한 존재다. 쇳덩어리는 수천 년을 써도, 잘만 쓰면 녹슬지 않고 천년만년 가니 말이다. 유기체와 무기체, 참 다르다.

18세기 프랑스의 생리학자 르 카, 이름이 좀 긴데 퍼스트 네임은 클로드 니콜라다. 그러니까 Claude-Nicolas Le Cat. 이 분은 외과 의사였는데, 말하자면 임상의이면서 해부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생리학자이기도 하다. 책도 많이 썼는데, 의학책만 쓴 게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소위 존재론이나 감각론같은 철학책도 여러 권 썼다.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데카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데카, 이분이 워낙 탁월해서 벽을 넘지 못했다. 실제로 가설을 논증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데카르트는 굉장히 꼼꼼하고 문장도 좋고 엄밀해서 읽다보면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데, 데카르트주의자들, 말하자면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글은 논증이 헐겁고 대충 건너뛰고 그래서 가설이 흥미롭더라도 설득력이 약하다. 르 카, 이분도 그런 면이 있다. 그래도 가설은 재밌다. 사람의 몸에 관한 얘기다.

르 카는 인간 신체를 기계라고 본다. 데카르트가 제안한 이른바 동물기계론의 연장이다. 말하자면 사람의 몸은 기계처럼 엄밀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구조? 사람의 몸은 고체, 액체, 유체, 이 세 요소로 구성돼 있다. 고체는 당근 딱딱한 물질, 예컨대 살, 손톱, 머리카락, 뼈와 같은 물질이다. 액체는 혈액이나 림프액, , 정액 등이다. 뭐 눈물이나 콧물도 있겠지만 르 카는 이런 액체는 신체 활동의 부산물, 말하자면 찌꺼기라고 얘기한다. 유체, 이게 중요하다. 유체는 고체와 액체의 순환을 가능하게 해 주는 에너지원이다. 유체가 없으면 고체도, 액체도 순환할 수 없다. 피가 돌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면 되겠다. 그럼 유체는 뭘까? 르 카는 유체를 기화상태의 액체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예컨대 유체를 정의할 때 신체 바깥의 유체를 얘기하는데 이건 순환기의 문제다. 그래서 유기체의 건강 상태는 외부 상황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코로 숨을 쉴 때 부패한유체를 받아들이면 유기체의 건강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핵심은 유체의 도움을 받아 액체가 얼마나 잘 순환하느냐다.

르 카가 사람의 몸을 간명하게 정의하는데 긴가민가하지만 요점은 이렇다. 사람의 몸은 무수한 관으로 구성된 기계라는 것이다. 이건 데카르트의 동물기계론과 판박이다. 좌우간 관 하나가 막히면 전체가 막힌다. 뭐 요즘은 워낙 의료기술이 뛰어나고, 화타 같은 분들도 많아 혈관이 막히면 바로 스텐트로 갈아 끼우니 다행이긴 하다. 그래도 막히면 위험하니 바로 뚫어야 한다. 고체가 좋은 사람이 있지만, 르 카의 생리학에 따르자면 그것만으로 사람의 몸은 유지될 수 없다. 순환기(액체)와 호흡기(유체)가 더 중요하다, 이게 르 카의 결론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3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