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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R. Mutt

paixaube 2011. 5. 27. 00:36
오래 전에 마르셀 뒤샹 평전을 사놓고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틈틈이 읽다보니 저 유명한 샘(Fountaine)에 관한 내용이 나와 생각을 더듬어 본다. 베르나르 마르카데의 <마르셀 뒤샹 - 현대미학의 창시자>, 뒤샹 평전으로는 분량이나 자료의 방대함에서 다른 평전들을 압도한다. 뭐 뒤샹 전기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티리 드 뒤브의 <레디메이드의 반향>에 실린 아티클 한 편이 이 사건을 소상히 다루고 있어 예전에 읽어본 적이 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김광우 선생이 쓴 뒤샹 전기도 있어 국문판으로는 참고할 만하다.

좌우간, 이 오브제는 <독립예술가협회(Society of Independant Artists)가 기획한 전시에 출품했다가 '거부' 당한 물건, 혹은 작품이다. 이 협회는 입회비 1달러와 연회비 5달러를 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회원이라면 누구나 작품을 전시할 자격이 있었다. 1,200명의 작가가 2,125점의 작품을 출품했던 대규모 전시, 그래서 'Big Show'라 불렀다. 전시 받침대 상단선의 길이가 약 4킬로미터로 아모리 쇼 전시장 넒이의 두배였다니 엄청난 규모였다. 어쨌든,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샘'은 전시되지 않았고, 카탈로그에도 소개되지 않았다. 협회의 규정상 공식적으로 거부될 수 없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숨겨졌다. 뒤샹의 말을 빌자면 "그 작품은 단순히 제거되었다. (...) '샘'은 그저 칸막이벽 뒤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샘'에 표기된 서명 'R. Mutt'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도 젊은 시절 나름의 견해를 내놓았던 적이 있는데, 뒤샹은 '그 아가씨'의 해석은 전혀 쌩뚱맞다고 말한다. 다양한 해석들을 열거하자면 이 서명은 '바보'(영어 mutt), '가난'(독일어 armutt, 이것이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해석이다), 심지어는 '어머니'(mutter)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뒤샹은 이렇게 말한다. "무트(Mutt)는 거대 위생기구 기업의 이름인 모트 워크스(Mott Works)에서 딴 것이다. 그러나 모트(Mott)는 그 기업 이름과 너무나 유사했다. 그래서 나는 무트(Mutt)로 바꿨다. 왜냐하면 그 당시 매일 상영하는 만화 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이 <무트 앤 제프(Mutt and Jeff)>였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즉각적인 반향이 있었다. 무트는 키 작고 웃기는 사람이고, 제프는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다. 나는 관심을 안 끄는 이름을 원했다." 나아가 뒤샹은 서명 때문에 야기된 해프닝과 오해, 과장 등에 대해 풍자적으로 비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리처드(Richard)를 첨가했다. 리처드란 이름은 소변기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가난함의 정반대(이름 속에 부자rich가 들어가므로) 의미가 보인다. 그러나 그것조자 아니었다. 단지 'R'만 집어넣었다. R. Mutt." 
뒤샹은 오히려 '관심'에서 멀어지려 했을 뿐이다. '진지함'에서 멀어지려 했다는 의미다. 심각하고 진지한 예술, 이것에 대한 조롱이라 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