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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이 된 식탁

paixaube 2010. 10. 1. 23:15

먹다 남은 스테이크 조각, 접시에 군데군데 묻어있는 소스, 찻잔에 깔려 있는 커피, 심지어 재떨이에 함부로 비벼 끈 담배꽁초까지... 이 모든 것은 식사를 마친 후의 테이블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할 음식물 찌꺼기와 설거지통으로 가야 할 지저분한 그릇들을 예술작품이라고 우긴다면 당혹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파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예술가가 있다.

 


신사실주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다니엘 스포에리가 주인공이다. 루마니아 태생으로 스위스로 이주했다가 다시 프랑스로 건너와 학업을 마친 그는 본래 또 다른 스위스 출신의 예술가인 장 탱글리(Jean Tinguely)의 조수로 예술에 입문했다. 그의 첫 작품은 ‘함정그림(Tableaux-pièges)' 연작으로 널빤지 위에 각종 오브제를 붙인 후 이를 벽에 걸어 마치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림처럼 평평한 판자가 바탕이지만 그 위에는 평면적인 이미지가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입체인 물건들이 붙어 있어 순수한 그림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평면 위에 물건을 붙여 그림도, 조각도 아닌, 하지만 그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이 기발한 작품은 이후 스포에리의 닉네임이 될 만큼 유명해졌다. 식탁 시리즈도 이 연작에 속한다.

 

스포에리는 작품의 주제를 심오한 형이상학적 개념이나 난해한 미술사의 논리에서 끌어오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찾아내려 했다. 어째서 예술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단 말인가. 이 점이 스포에리에게는 의아했다. 하여 20대 후반이라는 나이로 뒤늦게 예술계에 뛰어든 이 작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되풀이되는 식사에 주목했다. 동료들이 아뜰리에에 놀러와 함께 식사를 한 후 테이블에 남아있는 접시들, 주변에 널려있는 나이프와 포크, 물 컵들은 충분히 예술작품이 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또한 자연스럽게 배치된 물건들의 형태에는 흥미로운 조형성도 있었다.

스포에리의 작품은 비록 지저분한 그릇들을 모아놓은 것이지만 예술이 다루지 못할 이유는 없다.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