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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opos
지난 금요일 제 12회 사진비평사 수상식이 있었다. 우와, 벌써 12회째라니 오래 되었다. 상금도 없는 상이 이렇게 오래 가고, 또 5명 뽑는데 약 60명 정도가 지원한 걸 보면 신통할 정도이다. 수상자 중 한 명이 "사진비평상을 받는 건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 만큼 어렵다"고 수상소감을 말하는 대목에서, 풋, 하고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지만, 뭐 어떤 상이 됐든 지원하는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뒤풀이 자리에 어색하게 끼어 돌아가면서 한마디를 하게 됐는데, 나는 "상의 권위는 역대 수상자들의 목록에서 나온다"고 얘기하며 말을 맺었다. 특히 사진비평상처럼 상금도 없는 상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겠나. 상을 잘못 주면 아무리 상금이 많더라도 권위는 떨어지게 마련이므로. 한 가지 ..
사간동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학고재에 들러 권부문 사진전 을 보았다. 디지털 팩을 사용하여 찍었다고 얘기 들었는데, 호, 사진의 물리적 퀄리티가 흡사 베허스쿨의 후계자들, 그러니까 토마스 스트루스나 구르스키의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사진의 크기도 어떤 것은 전시장 벽면 전체를 꽉 채울 정도이다. 얼마 전 갤러리 현대에서 토마스 스트루스의 전시가 열렸는데(가보지는 못했지만), 바로 뒤이어 학고재에서 이런 전시가 열렸다. 그리고 그것도 국제적 명성이나 작품가격의 측면에서 스트루스와는 비교가 안되는 한국작가가 한국의 자연을 그에 못지 않은 퀄리티로 담아냈다. 마치 월드컵때 연봉이 몇백분의 일밖에 안되는 한국선수들이 유럽선수들과 싸워 이기거나 비긴, 그런 경우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갤러리 현대가 학고재에 보..
한정식 선생은 육명심, 홍순태 선생과 항상 함께 묶여 얘기되는데, 실상 사진은 아주 다르다. 이 차이는 아주 커서 함께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정도이다. 한정식의 사진을 굳이 규정하자면 형식주의(Formalism)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그 가치가 좀 과소평가되어 온 측면이 있다. 물론 한정식 선생은 아마추어로 사진을 시작했고, 강운구, 주명덕 선생에 비하면 작가로서 데뷔가 늦은 편이다. 어쨌든 그래도 본인의 작업에서는 일가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 포멀리즘 류의 사진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문화적 가치는 기록의 범주에 속하는 사진에 비하면 평가 절하되어 온 측면이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면 그럴 만하다. 하지만 이제는 되돌아볼 때도 되었다. 사진을 컬렉션하는 국공립미술관이나 사진박물관이라면 다..
우리나 서양이나 포토저널리스트들에게 주어진 상황은 좀 고약하다. 사진을 찍어도 싣겠다고 나서는 매체가 없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매체 환경이다. 전통적인 인쇄매체, 그러니까 신문, 잡지는 점점 디지털 매체의 확장과 더불어 위축되어가고 있다. 사진을 구매하던 인쇄매체가 위축되니 포토저널리스트들의 밥그릇이 작아지는 것이다. 이건 세계적인 현상이라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별로 없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매체 환경은 나빠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아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최초의 화보잡지가 나왔을 때는 망판인쇄도 없던 시절이어서 판각사들이 사진을 목판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파내서 힘들게 인쇄했다. 전송도 없었다. 한 달에 한두 번 나오던 시절이었다. 포토저널리즘의..
, 틈나는 대로 조금씩 읽어봤는데, 역시 강운구 선생다운 맛깔스러운 문장들 덕분에 읽는 맛이 있다. 에세이스트로 활동했어도 일가를 이루지 않았을까. 예전에 어느 세미나에서 강운구 선생한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강선생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사진의 본질이란 것에 매우 집착하시는 것 같고, 또 그 본질이라는 것을 단일한 무엇이라 여기시는 것 같은데, 혹 본질이란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 때의 본질이 단일한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면 어떡하시겠느냐, 이런 내용이었다. 단일본질과 복수본질의 문제는 논리학에서도 아주 설명하기 고약한 쟁점이고, 논쟁의 역사도 오래 된 문제여서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난상토론이 진행되던 상황이라 답변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얘기해봤자 결..
오래 전 조셉 니덤의 을 사려고 알라딘에 들어갔는데 절판되어 못사고 있다가 오늘 보니 중고책이 나와있어 옳다꾸나 싶어 찜을 하였다. 그런데 가격을 보니 헉, 원래 17,000원짜리 책이 39,000원에 나와있다. 내가 책에 미친 놈도 아니고 과학사 전공도 아닌데 이런 덤터기를 쓸 까닭이 없어 포기했다. 도서관에 가서 보면 될 것을 뭐하러... 이따금 꼭 보고 싶은 책이 있어 찾아보면 절판된 경우가 많아 아쉽다. 재출간하면 좋으련만. 서양에서는 이런 고전들은 문고판으로 값싸게, 대량으로 찍어내는데, 우리도 그런 출판문화가 있으면 좋겠다. 하여 중고책 가격이 어느 정도인가 궁금하여 법정 스님의 중고상품을 찾아봤다. 푼돈을 노린 벼라별 장사치들이 많다. 가격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인데 대략 2004년판은 5만원에..
국내에도 소수이지만 이슬람 교도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에게 이슬람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타자'에 가깝다. 전혀 다른 종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양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아랍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참 웃기지도 않는다.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는 인종차별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은 아랍인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시한다. 아랍인을 만나면 마치 벌레보듯 하면서 역 앞에 누워 있는 서양인 노숙자는 멋지다고 말한다. 이런 해괴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것도 일종의 인종차별인데, 서양사람들한테 못된 것만 배운 셈이다. 물론 서양에 있는 아랍인들 중에는 나쁜 놈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빈곤 상태로 천대받으며 오래 살아오다 보니까 교육 수준도 낮고 할렘가를 떠돌며 ..
20대 후반에는 한동안 로또를 자주 샀다. 허망하게도 한번도 당첨되어 본 적이 없다. 등수 안에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당시에는 술을 아주 많이 마셨는데, 물론 지금도 많이 마시는 편이지만, 술값을 아껴가며 로또를 샀으니 회까닥 했었다고 핀잔을 주더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낭비가 내게 중요한 걸 하나 가르쳐 주었다. 뭔고 하니, 로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꿈을 어떻게 조직화시킬 것이냐, 이런 문제이다. 나는 주로 당첨금이 높을 때, 이전 당첨자가 없어 최소한 2-3회 정도 누적될 때만 샀다. 참고로 서양에서는 1등 당첨자가 없을 때도 많고, 많아야 두세명이다. 우리처럼 1등이 대여섯명씩 나오면, 와, 이건 대박, 사람들 까무라친다. 우리는 점을 하도 많..
나는 집에서 요리(그냥 한끼 식사)나 설거지를 자주 하는 편이어서 가정주부의 마인드를 비교적 잘 아는 편이다. 물론 진정한 주부라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래서 음식 쓰레기에 대해 좀 민감한 편이다. 왠만하면 안남기려 하고, 어쩔 수 없이 남기면 이걸 음식쓰레기 봉투에 넣지 않고 어떻게 할까, 고민도 잠깐 한다. 사실 쓰레기 봉투에 들어가는 음식 쓰레기 중에는 아까운 게 많다. 그냥 먹어도 되는 그런 음식도 적지 않다. 그런데 정말이지 엉터리 식당에서 먹는 음식들 중에는 내가 쓰레기 봉투에 어쩔 수 없이 넣는 그런 음식 쓰레기보다 못한 음식이 많다.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는 쓰레기 음식을 먹고 있는 셈인데, 사실 원재료의 생산과 유통의 문제를 꼼꼼하게 따지면 과장이 아니다. 쓰레기를 돈 내고 사먹는..
마빈 해리스의 는 고기를 밝히는 사람들에 대해 기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식물성 음식으로도 충분한 단백질 섭취가 가능한데도 왜 사람들은 고기를 밝히는 것일까. 소비에트가 무너지기 이전의 사례이긴 하지만 요지는 분명하다. 폴란드인들은 고기공급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마치 폭동이라도 일으킬 듯 예민해지며, 구 소련은 곡물생산량 1위임에도 불구하고 가축 사육용으로 곡물을 수입했다. 고기를 못먹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불만족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나도 '고기를 밝히는 사람'인지라 이해가 간다. 며칠 고기를 못먹으면 아이들한테 짜증을 내고 별 일 아닌 것 가지고도 신경이 예민해진다. 먹고나면 우습게도 온순해진다. 어라, 그런데 요즘 경쟁자가 생겼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들, 애비를 닮아 비썩 말랐는데도 엄청..
아주 오랫만에 전시장 나들이를 했다. 을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갔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예술의 전당이라는 곳은 정말이지 장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사람들이 오죽 했으면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전시는 거의 대부분 줄서서 볼 정도로 '고급문화'에 목 말라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주최측에서 사전 조사도 하고 광고, 마케팅, 이런 것도 신경써서 하기 때문이겠지만, 그간 한국의 전시 문화가 얼마나 허접했었나를 역으로 보여주는 현상인 것 같기도 하다. 한겨레 신문이 아주 작정하고 나선지 오래 됐는데, 아직까지는 잘 먹히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마인드가 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사하려면 아예 까놓고 해도 될텐데, 장사꾼처럼 보이기는 싫고 그렇다고 밑지는..
* 고은사진미술관에서 강홍구 선생의 전시가 열리는 모양이다. 멀어서 가보지 못하는 대신 묵은 글 한편 올린다. 1970년대의 이른바 개발독재를 시작으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개발 지상주의의 폐해는 우리 사회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무분별한 재개발로 삶의 거처를 박탈당한 도시의 유민들이 늘어나고 부동산 투기 열풍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가 도시인의 욕망은 오로지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귀착한다. 한 개인에게 집에 대한 기억이 삶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한 줌의 볕도 들지 않는 후미진 다락방이든, 가족 전체가 오밀조밀 붙어살아야 했던 한 뼘 남짓밖에 되지 않는 사글세방이든, 한여름에도 따가운 볕을 피할 수 없는 옥탑 방이든 유년기를 보냈던 집은 누구에게나 추억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