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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opos
주명덕 사진전 오픈에 갔다. 꽃시장에서 장미(백장미라 들었다)를 사 와 시들어 말라가는 과정, 비장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담아 낸 작업이다. 죽은 꽃들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 묘한 감정,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잉그마르 베르그만의 시가 생각났다. "장미의 벼락 속에서"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무수히 쏟아지는 꽃들의 시체..." 뭐 이런 구절이었던 것 같다. 주선생님 특유의 어두운 톤이 죽음을 목전에 둔, 그리고 이미 주검이 되어버린 꽃들의 비장미를 북돋워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어둠은 그런 것인가... 많은 평자들이 주명덕의 사진을 기록과 역사의식, 전통에 대한 존중 등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약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 동의하는 편이긴 하..
앙드레 브르통이 주도하여 만든 초현실주의 잡지 미노타우로스(Minotaure)에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다양한 연구들이 실려있다. 초현실주의에 대한 연구가 주로 미술사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거기에 참여했던 20세기 초의 유럽 지성인들의 생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제한되어 온 느낌이다. 이 잡지에 기고했던 이들에는 예술가 뿐만 아니라 시인, 소설가, 철학자, 고고인류학자,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 서지학자 등 지(knowledge)를 추구했던 각계각층의 유럽 지성인들이 포함되며, 그 지(knowledge)라는 것의 성격 또한 심히 다층적이었다. 다루지 않은 문제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지의 영역을 확대시켜 낸 것도 그들이며, 때로는 지를 해친다고 간주되어 온 반(anti)지식에 속하는 문제들까..
어제가 6.10. 시청 앞에 많이들 모였다, 고 들었다. 가지 못했으니 그렇게 말할밖에... 세상 소식에 귀 닫고 지내려하다가도, 우리 사회를 포기하는 수밖엔 달리 도리가 없다는 생각에 그냥 세상을 견뎌내며 살자고 마음먹었다가도 진정성을 갖고(그렇지 않은 이들, 예컨대 좌파적 관성에 젖어서 오는 이들도 많을 것이므로) 시청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포기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부터 갖고 있던 몇 가지 상념들을 정리도 할 겸해서 옮겨본다. 이념의 좌표가 사라진 지금 자칭 타칭 진보, 혹은 좌파에 속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형은 어떤 것일까. 우선 아주 소수의 근본적 좌파, 요컨대 여전한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진정 부럽다. 신념을 갖지 못한..
내가 좋아하는 스피노지스트 박기순 형으로부터 아주 오래 전 귀동냥한 바에 따르면 스피노자에게 윤리는 신에 대한 절대복종으로 정의되었던 것 같다. 불완전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이란 신에게 도무지 복종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개념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신이란 존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모든 불완전함을 덮고 있어 그에 대한 복종이야말로 철부지 인간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의 길, 요컨대 윤리라는 내용이 되겠다. 물론 중세의 교부들이나 스콜라 시대의 철학자, 혹은 신학자들에게 신의 본질을 따져묻는 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생각이기는 했다. 어떤 관점에서는 본질마저도 신에 속하는 터라, 그리고 존재마저도 신을 정의할 수 없는지라 신에게는 본질도 없고 존재도 없다는, 신학적 입장에서 철학하는 이들에게 이런 생각..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가 을 읽고싶다 해서 알라딘에 주문해 사줬었나 보더라. 몇 가지의 번역본 중 서평을 참고하여 신중에 신중을 기한답시고 아내가 골랐는데, 막상 받아 읽어보니 도무지 읽히지가 않아 난감하였던 모양. 딸아이는 독서를 좋아하여 늦은 밤까지 몰래 불켜놓고 책 읽다가 혼쭐이 나곤 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런 녀석이 몇 페이지 읽다가 덮어버렸더랜다. 아이가 희곡을 읽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대사 하나하나의 깊은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미숙할 것이라는 생각에 나도 몇 페이지를 읽어보았다. 중학교때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런데 이상하다, 입으로는 잘 읽히는데 격정에 휩싸인 주인공들의 절절한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하여 역자서문을 펼쳐보니 세익스피어 특유의 각운을 살리..
설레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연다. 없는(ou) 곳(topos)을 찾아 온, 불가능한 방문을 환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