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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xaube 2011. 3. 19. 02:31

일과를 마치고 다음 날 별 일 없으면 술 한잔 하며 음악 듣거나 책보거나 하는 게 내 인생의 낙이다. 그러다보니 자연 혼자 마시는 날이 많은데, 블로그에 올리는 글의 태반이 술 한잔씩 하다가 쓰는 것들이다. 이게 좋은 이유는 강제성이 있어서 생각을 억지로 쥐어짜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문장을 공들여 다듬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말 그대로 리버럴하게 써도 된다는 것이다. 좌우간 요즘도 생각이 막히거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거나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싶으면 가끔씩 김우창 선생의 문집을 들춰본다. 

“심미적 언어 구사의 힘이야말로 단편화된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전인격적 수련을, 그리고 기계적인 적용의 기술이 아니라 변하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창조적 지성과 감성을 증거해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김우창 전집 4, 법 없는 길>, 민음사, 196쪽. 

심미적 언어를 구사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생각만 앞서 거칠고 투박하게 뜻만 전달하는 언어도 아니고, 팔랑거리는 감성만 앞세워 빈약한 정신을 가리는 그런 언어도 아니다. 김우창의 핵심 개념 중의 하나인 ‘심미적 이성’이 구사하는 언어라고 보면 되겠다. 모국어를 가지고 그런 언어에 가까워지기도 쉽지 않은데, 외국어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참 아찔하기만 하다. 요즘 세태를 보면 학자들한테도 영어 구사를 강요하는데, 언어를 기능적으로만 생각하는 발상이다. 김우창 선생의 표현처럼 언어를 ‘기계적인 적용의 기술’로 생각하는 셈인데, 그렇게 해서 무슨 ‘창조적 지성과 감성’을 키울 수 있을까. 이건 단지 실용주의라고 치부해버리고 말 사안은 아닌 듯싶다. 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갈수록 어렵고, 실제로 나도 잘 못해서 부끄러울 때가 많다. 이런 현실에서 국어 구사력을 키워나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국어, 말 그대로 나라 말인데, 나라 말을 무시하고 남의 나라 말로 사람의 지성을 평가하다니 이걸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