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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인 삶

paixaube 2011. 3. 23. 00:57

빤한 얘기지만 인간은 두 가지 삶을 동시에 산다. 하나는 세속적인 삶, 말하자면 걍 통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대로 사는 삶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질투하고, 뭐 그렇게 사는 삶, 누가 내 뺨 때리면 나도 가서 때리면서 사는 삶, 제 자식 좋은 대학보내려고 학원보내고, 학원비 벌기 위해 엄마가 아르바이트하는 그런 삶, 작품 팔아 생계비에 보태려고 싫지만 잘 팔릴 것 같은 사진 찍는 작가들의 삶, 나처럼 하기 싫은 강의도 하고 쓰기 싫은 원고도 가끔씩 쓰면서 사는 그런 삶, 그러면서 지치고 피곤하면 술이나 퍼마시면서 사는 그런 삶, 에라이 더러워서 못 살겠다 하면서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런 삶이다.

근데 그렇게만 산다면 어디 사는 맛이 있나, 하여 인간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동시에 산다. 초월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전혀 현실과 다른 삶, 누가 날 미워하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사는 삶, 남들은 모두 제 자식 영어학원 보내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고집피우는 삶, 팔리지 않는 작품을 고집스럽게 꾸역꾸역 만들어나가면서 사는 작가들의 삶, 세속적인 가치에 등 돌리고 사는 삶, 보통은 고매하게 산다고들 하는그런 삶이다.
 

예전에 선배들이 나한테 그런 얘길 했었다. "네가 무슨 고고한 학이냐" 그런 얘길 들으면 이 양반들 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이 한 가지 삶만을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제아무리 세속적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도, 제 아무리 고상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두 가지 삶이 함께 있다. 공자님도 자식을 낳았으니 섹스도 한 것이고 먹고 살았으니, 즉 연명했으니 세속적인 삶을 산 것이다. 아주 잡스런 인간의 머리속에도 고상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있지 않겠나. 그러고 보면 인간은 거기서 거기다.

문제는 이 두 가지의 삶이 아주 별개의 것으로 분리될 때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고상한 삶을 사는 사람과 통속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두 부류로 나눠질 때 인간의 종이 분열된다. 누구나 초월적인 삶에 대한 욕망이 있는 법이다. 아주 천박하고 비열한 사람에게도 그런 욕망은 있다. 반대로 아주 고상하고 고매한 인간에게도 비천하고 저열한 욕망이 있다. 그런데 너는 세속적인 놈이야, 반대로 너는 고상한 놈이야, 이렇게 규정해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인간답지 못하다.

초월적인 삶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좀 우스운 데가 있다. 나는 불경에 대해 잘 모르지만 주워들은 풍월에 따르자면 유마경에서는 세속적인 세계가 병들어 있는데 자기만 초월을 향하여 도를 닦는다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들었다. 초월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한테나 있는 법이다. 하여 그걸 버린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면 세속적으로 사는 건 쉬운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속적인 삶을 살수록 초월적 삶에 대한 욕망도 커가는 법이다. 그렇게 현실에 충실하여 살아온 사람들이 나중에 느끼는 회한이 얼마나 큰가. 물론 세속적인 삶에 충실하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똑같은 회한이 있다. 하여 이 둘의 간격을 좁히면서 사는 것이 후회를 줄이는 삶이 될텐데, 그게 어디 쉬운가. 속세에 있으면 출가하고 싶고, 출가하면 환속하고 싶고, 뭐 그런게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자기한테 없는 것만을 원하고(있는 건 원할 필요가 없을 터이므로), 자기가 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만 가고싶어 한다.(이미 그 곳에 있는데 다시 갈 이유가, 아니 다시 갈 수가 없으므로) 결국 인간은 초월적인 삶을 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초월적인 삶을 꿈꿀 수조차 없지 않은가. 하여 세속적인 삶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초월적인 삶도 가능할 터이므로. 반대로 초월적인 삶을 살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세속적인 삶을 비틀어 바꿀 수 있을 터이므로. 그런 점에서 김훈 선생의 '밥' 결정론은 좀 래디칼한 구석이 있다. 술김에 얘기하자면 너무 세속적이고, 또 가부장적이기도 하다. '먹여 살려야 한다', 이게 어떻게 보면 고매한 얘기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통속적인 얘기 아닌가. 하긴 고매한 삶에 없는 것이 이 '세속적인' 요소이므로 이상할 것도 없다. 좌우간  한 가지 삶에만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그래서 내 눈에는 반쪽짜리 삶으로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