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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본문
한없이 낮은 자세, 이게 가능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를 낮춰도 어딘가에 더 낮은 이가 있을 텐데 아무리 쭈그러들어도 더 낮은 이가 있을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나를 낮추는’ 윤리적 태도는 어느 지점에서 오만방자하게 비춰질 수 있다. 오만방자함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낮은 이’들과 눈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하여 관건은 낮추고자 하는 의지에 있지 않을까 싶다. 석가모니나 예수가 그리 했는지 역사적 팩트를 모르니 알 수 없지만 그 ‘지향’은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좀 웃긴 얘기지만 ‘무한히’ 낮다는 건 이미 높다는 뜻이다. ‘저 아래’가 있으니까. 그러나 ‘저 아래’는 도대체 어디를 얘기하는 것일까. 제로가 있으면 마이너스도 있고, 마이너스에도 무한대로 수렴하는 마이너스가 있다. 숫자놀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칸트는 이 ‘무한’을 대번에 개념으로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비교를 통해서는 무한을 거머쥘 수 없으니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럼 ‘무한히’ 낮은 사람과 ‘무한히’ 높은 사람이 따로 있나? 우스운 얘기다. 하여 무한은 수학에도 있고 철학에도 있지만 현실에는 없다. 무한, 멋진 말이지만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안드로메다다. 아, 안드로메다는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