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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번역 본문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싶다 해서 알라딘에 주문해 사줬었나 보더라. 몇 가지의 번역본 중 서평을 참고하여 신중에 신중을 기한답시고 아내가 골랐는데, 막상 받아 읽어보니 도무지 읽히지가 않아 난감하였던 모양. 딸아이는 독서를 좋아하여 늦은 밤까지 몰래 불켜놓고 책 읽다가 혼쭐이 나곤 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런 녀석이 몇 페이지 읽다가 덮어버렸더랜다. 아이가 희곡을 읽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대사 하나하나의 깊은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미숙할 것이라는 생각에 나도 몇 페이지를 읽어보았다. 중학교때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런데 이상하다, 입으로는 잘 읽히는데 격정에 휩싸인 주인공들의 절절한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하여 역자서문을 펼쳐보니 세익스피어 특유의 각운을 살리기 위해 우리말 3.4조의 운문형식을 취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랬었구나. 그래서 읽을 때의 리듬감은 있는데 감정은 날라가버렸구나. 서평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터이긴 하나 이번엔 실수했다. 앞으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점 가서 다만 몇 줄이라도 읽어보고 사야겠다는 생각, 특히나 그것이 문학 번역서일 경우에는 더더욱...
반면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고전을 오래도록 읽지 못했다는 생각에 펼쳐든 것이 이제 "스완네 집 쪽으로"를 다 보고 "꽃 피는 아가씨들 그늘에"를 읽을 참이다. 진짜로 읽고 싶은 부분은 주인공 마르셀이 사랑의 격정에 빠져드는 "소돔과 고모라" 편인데,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대신 "스완의 사랑" 편을 읽으며 참는다. 번역은 훌륭하다. 한 문장이 열 몇줄씩 되는 글을 이토록 정교하고 침착하게 옮겨낸 역자의 노고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주 오래 전 원문을 읽어볼 요량으로 잠시 비지땀을 흘렸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의 내겐 과욕이었더랬다. 이제 그리 하지 않더라도 김창석 선생이 흘린 땀방울 덕분에 수십배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스완의 사랑" 편에서 프루스트, 그리고 역자가 사랑의 늪에 빠져들어가는 한 고상한 인간의 심리를 묘사, 아니 옮겨내는 솜씨는 그야말로 일품이며 정성이 가득하다. 스완이라는 이 신비로운 인물은 사교계의 총아이자 고상한 예술애호가이다. <피가로>지에 그에 관한 기사가 실리기도 하며 막마옹 대통령과 점심식사를 하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귀족 부르주아이지만 "하찮은 것에 주의력을 돌리게 하기 때문에" 신문을 비난하며, "우리는 본질적인 것이 씌어있는 서적을 한평생 서너번밖에 읽지 않"는다고 말할 때는 "유식한 체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비꼬는 과장된 가락으로 발음"하기도 하는 겸손한 인물이기도 하다. 베르메르(역자는 페르메르라고 옮겨놓아 처음에는 누군가 했다)와 틴토레토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이 예술애호가가 자유분방한 사교계의 여인 오데트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격정적인 사랑, 차라리 사랑이 아니었으면 싶을 만큼 혼탁한 욕망과 질투가 뒤섞여 끝모를 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 것이 "스완네 집 쪽으로"의 제2편이다.
스완의 사랑 :
"사랑이 생겨나는 온갖 형태 중에서, 간질을 일으키는 온갖 동인 중에서, 가장 효력있는 것 중의 한 가지는, 이따금 우리를 지나가는 흥분의 격한 숨결이다. 그런 순간에 우리가 서로 기쁨을 나누는 인간이야말로 우리가 사랑하게 될 인간이다. 그 인간이 과연, 그때까지 다른 인간보다 더, 또는 다른 인간과 같은 정도로 우리 마음에 들었는지 아닌지는 문제가 안 된다. 필요한 것은, 그 인간에 대한 우리의 기호가 배타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인간이 우리 몸 곁에 없게 되었을 때- 그 인간의 동의에 의하여 우리가 향락한 그 쾌락의 추구에 대치되어 급작스럽게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어떤 욕구, 그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욕구이면서도 사회의 법칙에 의하여는 채워 줄 수도 진정시킬 수도 없는 당치 않은 욕구, 그 인간을 자기 소유로 하려는 주책없고도 고통스러운 욕구가, 우리들 몸 안에 머리를 쳐드는 것인데, 그때에 그 사랑의 조건은 실현되는 것이다."
스완의 질투 :
"그런데 그의 증오는 그의 연정과 똑같이 시위운동을 하여 효력을 나타내지 않고서는 못 배겨, 그는 이가 갈리는 상상을 점점 더 멀리 밀고 나가는 데 기쁨을 느꼈으니, 왜냐하면, 그가 오데트에게 덮어씌운 배신 덕분에 그녀가 미워지고, 그리고 만약 그 배신이 정말이라면, 그녀를 벌하고 또 이제는 참을 수 없을만큼 분노를 냅다 푸는 기회가 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스완의 상사병 :
" 스완의 상사병은 참으로 복잡하여서, 스완의 온갖 습관에, 온갖 행위에, 사념에, 건강에, 수면에, 생명에, 그리고 그가 죽은 뒤를 위하여 소망하고 있는 것까지에, 어찌나 밀접하게 섞이고, 그와 일체가 되어 있었던지 거의 그 자체를 온전히 파괴하지 아니하고서는 떼어 놓을 성싶지가 않았다. 스완의 사랑은 외과의사의 입버릇처럼 이미 수술불능이었다."
사랑의 격정을 치뤄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프루스트도, 역자도 겪었을 터. 십수년 전의 나도 그랬다. 그런데 결국 스완의 사랑은 오데트에 대한 무관심으로 끝난다. 옛날의 나처럼... 그런 사랑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두렵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지만 사람들아, 사랑은 의지의 저 편 너머에서 날아온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