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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정교육

paixaube 2009. 7. 2. 22:42
몇 달 전에 읽었던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이 이제야 생각났다. 시간 없고 바쁘다면서도 소설책을 볼 여유가 있는 걸 보면 '치명적으로' 바쁘지는 않은 모양, 하긴 그래서 차몰고 나가려다가도 전철 타곤 한다. <감정교육>을 읽은 이유는 부르디외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문학 장의 기원과 구조"라는 부제가 붙은  <예술의 규칙>이 이 <감정교육>의 분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듯하여 몇번씩 짜증이 났으나 끝까지 참고 읽었다. 플로베르의 주인공들은 유사점이 있는 것 같다. 엠마 보바리도 그렇고, 여기에 나오는 프레데릭 모로도 그렇고, 사랑 때문에 갈팡질팡하고, 한없이 심약하고 우유부단한 듯하면서도 사랑을 향해서는 저돌적인, 그렇게 보면 나약한 사람들은 아닌 듯.
어쨌든 부르디외의 <감정교육> 독해는 독특하다. 이걸 사회학적 분석의 모델로 삼다니, 이런 독해도 가능하구나, 라는 생각, 뭐 그렇게 읽을 수도 있겠지만 프레데릭과 아르누 부인의 사랑이 너무 묻혀버렸다. 프레데릭이 권력 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아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벌이는 온갖 도박과 야합, 때로는 그것이 기다림이나 포기로도 나타나지만, 결국 그 행위들의 저변에 깔려있는 것은 아르누 부인을 향한 사랑과 얽혀있는데 말이다. 그가 상속을 초초하게 기다릴 때나, 로자네뜨의 치마폭에 파묻혀 지낼 때나, 당브뢰즈 부인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을 때나, 자신의 야망을 펼쳐나가려 할 때나 그것을 포기하려 할 때나 이 모든 것은 결국 마담 아르누 때문인 것을. 어쨌든 그래도 부르디외식 독해도 음미해 볼 만하다.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자기의 야망을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펼쳐나가는가를 보여주기 때문. 그 '다른 방식'이란 정말로 달라, 인간의 종류를 몇 가지로 구분해야 할 정도. 모든 인간이 다 같은 인간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마음아프고 가슴시린 것은 프레데릭과 아르누 부인의 사랑, 그들은 15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에야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고 영원히 헤어진다.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속이 썩어갔을까. 근데 어째서 이 슬픈 사랑얘기를 부르디외는 그렇게 읽었을까. 목적에 집착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머리로만 읽어서였을까. 하긴 독해는 자유니까, 내 독해도 그냥 하나의 독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