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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광장

paixaube 2009. 7. 29. 21:41
휴가 차 시골집에 들렀다. 일년에 몇차례 잠깐씩 머무는 옛 집, 이제는 다락겸 창고로 변해버린 나의 옛 방에 가보니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책들이 굴러다닌다. 그래도 운좋게 주인에게 버림받지 않고 남아있는 녀석들이다. 얼마 전 열렸던 포럼 제목이 "광장 밖의 예술가들"이었던 생각이 나서 최인훈의 <광장>을 가져왔다. <구운몽>과 함께 묶인 1983년 판본이다. 세로판형이라 요즘 사람들은 읽기 고약할 것, 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는데, 그래도 운치가 있다. 섬에 가면서 혹 시간이 나면 읽으려고 프루스트를 가져갔다가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한 대신 <광장>의 앞부분을 조금 들추어보았다. 휴가 가면서 책이라니, 그것도 아이들과 가면서, 바보같이...

그래도 어쨌든 생각의 실마리는 거머쥐었다. 광장과 밀실, 개인의 삶을 가두는 이 두 공간에 대한 사색이었던 것인데 어째서 오해하고 있었을까.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면서도 또한 다른 한편으로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라는 인식, 하여 어느 한가지에만 집착할 때, 그래서 밀실 속에서만 살려하거나 광장에서만 살려할 때 인간의 삶은 기괴해진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 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 1961년판 서문 -

광장에 서고자 하는 열망이나 광장을 잊어버리고자 하는 열망 사이에 본질적으로 차이는 없다. 이데올로기를 위해 사랑을 버리거나, 사랑을 위해 이데올로기를 버리거나 무엇이 다르겠나. 이명준의 실패와 좌절은 개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열심히 살고 싶어한"  죄 때문이었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