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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본문
고통에 대한 니체의 관점, 좀 더 정확히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들뢰즈의 니체 해석. <비극의 탄생>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외디푸스, 안티고네, 트로이 전쟁 등과 같은 비극이 전해주는 공포, 이것은 "신들의 시선을 즐겁게 하기 위한 놀이" 였다는 것. 인간의 편에서 보자면 신들이 정해놓은 운명(신탁, 예정된 운명이 어떤 것인지를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다는 인간의 초라한 한계) 자체가 두려운 것이다. 자신의 운명이 파탄을 향해 있음을 알고 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공포, 그것이 이미 고통이다. 신에게서 고통을 즐기는 법을 배워 온 인간들, 타인의 고통에서 "삶의 흥분제"를 찾는다.
"우리의 세련됨, 또는 우리의 위선은 잔인성이 원시인에 의해 선호된 즐거움이었고, 거의 모든 쾌락 속에 요소로 들어갔을 정도까지 정력적으로 스스로 드러내길 원하지 않는다.... 잔인성 없이는 즐거움도 없다. 우리에게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장구한 역사가 가르치는 바가 그것이다. 그리고 처형은 또 축제의 몸짓들이었다".
니체는 3세기경까지도 그리스 남부의 군소 섬들에 여전히 희생제의를 비롯한 카니발리즘이 남아있었음을 지적한다. 잔혹함에 대한 갈망은 문명사 전체 속에서 한번도 사라져본 적이 없었다. 형태는 달라졌을지언정 말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쾌감이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가책과 죄의식이다. "사람들은 고통에 반대해서 열정이라는 수단으로 자신을 잊는다. (...) 또 그들은 보다 더 많은 고통을 생산하면서, 그것을 내재화하면서 고통에서 회복된다. 사람들은 자신을 잊는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상처를 감염시키면서 고통에서 회복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지금도 여전하다. 사람의 본성이 어찌 쉽게 바뀔 수 있겠나.
"우리의 세련됨, 또는 우리의 위선은 잔인성이 원시인에 의해 선호된 즐거움이었고, 거의 모든 쾌락 속에 요소로 들어갔을 정도까지 정력적으로 스스로 드러내길 원하지 않는다.... 잔인성 없이는 즐거움도 없다. 우리에게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장구한 역사가 가르치는 바가 그것이다. 그리고 처형은 또 축제의 몸짓들이었다".
니체는 3세기경까지도 그리스 남부의 군소 섬들에 여전히 희생제의를 비롯한 카니발리즘이 남아있었음을 지적한다. 잔혹함에 대한 갈망은 문명사 전체 속에서 한번도 사라져본 적이 없었다. 형태는 달라졌을지언정 말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쾌감이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가책과 죄의식이다. "사람들은 고통에 반대해서 열정이라는 수단으로 자신을 잊는다. (...) 또 그들은 보다 더 많은 고통을 생산하면서, 그것을 내재화하면서 고통에서 회복된다. 사람들은 자신을 잊는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상처를 감염시키면서 고통에서 회복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지금도 여전하다. 사람의 본성이 어찌 쉽게 바뀔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