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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부터 1930년까지 총 15호가 발행되었던 잡지 <Documents>, 바타이유가 편집장으로 있었다. 브로통의 <초현실주의 혁명>지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이 다르다. <초현실주의 혁명>지보다는 고고학이나 민속학 쪽 자료들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초현실주의가 초기의 방침과 달리 점차 순수예술 지향성을 보이면서(표현이 좀 그렇지만 “형식주의 예술”이란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여기에 반기를 든 이탈자들과 고고학자, 민속학자들이 주도하여 만든 잡지라고 보면 된다. 브르통과 아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바타이유의 영향이 컸다.(바타이유는 브르통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무시하기까지 했는데, 초현실주의의 '교황'으로 불렸던 브르통을 '멍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없었다) 초현실주의는 점차 도그마에 빠져들고 있었고, 형식주의로 치닫고 있었다. 아방가르드 예술조차도 상품화되어 갔다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초현실주의는 본래 의도와 달리 예술의 가치를 단순한 교환가치로 변질시켜 버린 형식주의 예술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이를 일찍이 간파한 이들의 반(反)미학적 움직임이 <Documents>을 통해 결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1930년 2월호 <Documents>에 실린 흥미로운 글이 바타이유의 <자연의 탈선>인데, 여기에 재미있는 도판이 있다. 1775년에 발행된 레뇨(Regnault)의 판화집에 실려 있는 그림이다. 바타이유의 결론은 기형은 자연의 부정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다. 상세한 논증은 술을 좀 마신 관계로 생략한다. 해질 무렵부터 홀짝홀짝 마서대면서 이것저것 했더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나중에 정신이 들면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