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pos

김대중 본문

단상

김대중

paixaube 2009. 8. 20. 02:46
3김 중 한 명이 자연으로 돌아갔다. 가장 아까운 이가 가장 먼저 갔다. 햇볕을 받으며, 햇볕을 남겨놓고 갔다. 그에게 표 한번 주지 못한 것이 미련으로 남는다. 지역주의는 어쩔 것인가. 지역주의에 기대어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코자 했으나 결국 둘 다 과거로 후퇴하고 있는데. 많은 언론에서 김대중에 관한 정보를, 역사를 쏟아내고 있다. 살아 생전 그랬던 적이 없다. 죽음은 역시 적들마저 숙연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어쩌면 우리 현대사를 통털어 가장 탁월한 정치가였을지도 모를 이 전략가, 웅변가, 너무나 지략이 뛰어나 소름마저 돋게 만들었던 이. 지독한 현실주의자임에도 이상, 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았던 외줄타기의 명수. 세월은 차분한 판단을 하도록 도와주는 모양이다. 현실정치가로서의 그가 보여주었던 행보때문에 신뢰를 접었던 이들도 다시 생각을 바꾸고 있다. 모든 면에서 그가 옳았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최선의 선택은 현실의 몫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는 가능한 차선을 가려내는 판단의 명수였을까. 현실정치는 무엇이며, 이상으로서의 정치는 무엇일까. 생사의 고비를 여러번 넘나들었던 그에게 현실정치와 이상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낭독을 거부당했던 고 노무현 전대통령 추도사에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이 지독한 현실 정치가의 꿈과 이상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보인다. 꿈은 불가능하기만 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불가능한 꿈을 꾸는가. 혹여 꿈을 꾸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나 더, 대의를 위하여 소의를 희생하는 것, 그에게 이것은 원칙이었던 듯.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을 버리는 선택, 추호의 주저도 없이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은 현실주의만이 할 수 있는 일. 선택은 쉽지만 판단은 어렵다.  그래도 끝까지 그를 괴롭혔던 것은 소의를 희생시켜야 했던 데서 오는 자괴감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만약 없었다면 추모해서 무엇하리. 선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