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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형이상학

paixaube 2010. 1. 8. 02:30
 

마가진 리테레르(Magazine litteraire)였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데, 데리다에게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세권의 철학 서적이 무엇이었냐고. 대답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레비나스의 <총체성과 무한>이었다. 앞의 두 권이 갖는 위상,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총체성과 무한>이 그토록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것이다. 아마도 데리다 개인에게는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박사학위 논문을 후설(제목이 아마 “후설에게서의 직관이론”쯤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로 썼던 사람이 어째서 레비나스의 책에서 큰 영향을 받았는지, 이것은 좀 의문이 들 수 있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레비나스와 데리다로 논문을 썼던 나로서는 이해가 간다. <총체성과 무한>을 오래 읽으면서 타자에 대한 생각을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중요했던 세권을 꼽으라 한다면 바타이유의 <에로티즘>, 레비나스의 <총체성과 무한>, 데리다의 <폭력과 형이상학>,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아주 도식화시켜 말하자면, 바타이유는 인간의 의식에 대해,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해, 데리다는 언어에 대해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앞의 두 권은 제쳐놓고 <폭력과 형이상학>에 대해서만 좀 얘기하자면, 이건 개인적으로 데리다에게 아주 중요한 초기 저술이라고 생각한다. <총체성과 무한>은 1961년에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 대한 비판적 주석인 <폭력과 형이상학>은 1964년인가에 나왔다. 데리다가 1931년생이니까 33살에 썼다. 그 나이에 이런 저술을 썼다는 건 정말이지, 난 사람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좌우간, 데리다는 여기에서 그리스적 사유와 유태적 사유, 이 사이에서 아주 커다란 모험을 한다. 레비나스와 데리다 두 사람 모두 유태인인데, 데리다는 그리스적 사유에 익숙한 사람이고, 그걸 옹호한다. 아닌 듯 하면서도 결국은 그렇다. 그래서 유태 랍비들한테 비판도 많이 받은 것으로 안다. 어쨌든 <폭력과 형이상학>은 레비나스에게는 아주 곤혹스런 비판이었다. <총체성과 무한>이 그토록 강조했던 ‘타자’에 대한 존중, 그것이 ‘윤리’인데, 데리다는 ‘타자’에 대한 존중, 그러니까 윤리는 폭력을 끌어들여야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논증은 좀 복잡하니까 생략하고 결론만 얘기하자면 그렇다. 이 비판은 실제로 레비나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그의 두 번째 주저인 <존재와 다르게-본질을 넘어서>를 쓰도록 이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의 논쟁은 계속되는데, 출발은 <폭력과 형이상학>이다. 아주 중요한 텍스트인데, 현상학 개념을 둘러싸고 논지전개가 이루어지고 있어 만만치 않다. <글쓰기와 차이>에 실린 글이고, 형식은 주석이지만 아주 독창적인 개념들이 튀어나오는 ‘저술’이다. 내게는 아주 많은 영향을 미친 텍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