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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 본문
아감벤의 <예외상태>를 읽어보니 우리 사회를 해석하는 데도 유효한 듯하여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우선 ‘예외상태’라는 개념을 정확히 정의해야 하는데, 이것이 만만치 않다. 책의 상당 부분이 이 개념을 제대로 정의하는 데에 바쳐져 있기 때문에 한 두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우선 법의 효력이 일시적으로 정지된 상태라고 해두자. 로마에서 유스티티움이라 불렀던 법의 정지 상태와도 비슷하다. 현대적 의미에서 보자면 긴급사태, 비상사태, 이런 것들이 발생했을 때 법이 일시적으로 효력을 잃고 긴급조치 같은 초법률적인 힘들이 작동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유신 때의 긴급조치를 생각하면 된다)
예외상태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입법, 사법, 행정의 구분을 일시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다. 문명사의 어느 시기에나 이러한 예외상태는 있었다. 법률에 우선하는 임시적 조치가 무엇 때문에 생겨나는가, 이 점이 중요하다. 고대에는 절대통치권자가 죽었을 때 예외상태가 등장했다. 그는 오히려 법보다 우선하는 자, 법을 만드는 자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것은 쉽게 이해가 간다. 한편 무엇보다도 예외상태의 가장 보편적인 경우는 혁명에 기원을 두고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제헌 의회가 공표한 법령에 따라 계엄 상태는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등장한다. 가장 보편적인 가치, 예컨대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계엄 상태를 수용할 수도 있다.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의 한 대목을 인용하자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크다고 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민주주의 자체의 일시적 희생 따위야 정말 사소한 것”이라는 인식이 그 바탕이 되겠다.
이와 관련하여 저항권의 문제가 예외상태와 유사하다. 이탈리아 헌법 초안에는 “공권력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와 기본적인 자유를 누릴 권리를 침해할 경우 억압에 저항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라는 조항이 있다. 저항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도 이러한 조항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항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예외상태를 인정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즉 법이 법의 부정을 용인하는 역설적인 경우가 되겠다. 따라서 문제는 과연 예외상태라는 것이 초법적인 권한을 갖는 것인지, 다시 말해 법의 바깥에 있는 것인지, 안에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아감벤은 둘 다 아니라고 말한다. 보통은 예외상태가 법과 무관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는 관습에서 온 것이다. 로마법의 영향 하에서 보면 “긴급사태는 법률을 갖지 않는다”는 격언이나 “긴급사태에서는 어떤 법률도 인정될 수 없다”거나 “긴급사태는 그에 고유한 법률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관습으로 굳어져 왔다. 예외상태에 대한 칼 슈미트의 견해도 마찬가지이다. 예외상태는 “법질서 전체의 효력 정지”이자 “모든 법적인 고려에서도 벗어나 있는”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법과 행정권력에 대한 혼동이 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법과 법의 힘이 다르다는 것. 예외상태에서 발효되는 긴급조치나 일시적 법령은 ‘법’과 다르지만 ‘법의 힘’을 지닌다. 즉 입법권과 행정권의 행사는 본질적으로 다른데, 예외상태에서는 행정권을 통해 법의 힘을 법처럼 작동시킨다는 것이다. 독재권력이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상황에서 통치권자의 말은 법은 아니지만 법의 힘을 갖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이쯤 되면 예외상태라는 것이 특별한 어떤 상황, 예컨대 혁명이나 독재, 국가위기사태와 같은 상황에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점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오늘의 한국사회 역시 예외상태에 가깝지 않은가.
아감벤의 결론이 그렇다. 예외상태는 법이 부재하는 아노미 상태와는 다르다. 그렇다고 법이 올바로 작동하는 상태도 아니다. 이러한 애매한 상황은 점차 기능과 영역을 넓혀 오늘날 거의 전지구적 규모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법의 규범적 측면은 무소불위의 통치 권력에 의해 무시되고 부인되기에 이르렀는데, 이 폭력은 대외적으로는 국제법을 무시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는 항구적인 예외상태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법을 적용하는 척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법 위에 군림하는 행정 권력은 예외상태를 교묘히 은폐한다. 그렇게 우리는 법이 없는 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서 사는 셈이다. 우리는 이처럼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