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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마술 본문
테크놀로지, 혹은 과학이 예술에 미친 영향은 자주 간과되거나 때로는 무시되기 일쑤인데, 이는 아주 편협한 생각이라고 본다. 이러한 생각은 낭만주의 예술관이 물려준 영향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예술은 과학적 사고에서 아주 많은 것을 배웠다. 이 때 과학을 뜻하는 싸이언스는 근대 시기에 나온 말이다. 싸이언스의 라틴식 개념은 스키엔티아인데, 이건 아르스, 그러니까 아트의 라틴식 개념을 대체한 것이다. 이 차이는 아주 중요하다. 희랍사람들에게는 이 구분이 없고 그냥 테크네에 뒤섞여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좀 많이 돌아가야 한다. 오늘날의 과학적 사고와 고대, 중세의 과학적 사고에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근대 이전의 사고를 ‘과학적’이라고 말할 때는 그것이 어떤 과학이었는가를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중세까지의 과학은 그냥 자연학, 그러니까 피지카라고 불렀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산이다. 14세기까지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은 금서에 속했다. 기독교적 세계관, 우주관을 위협하는 것이라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16세기는 ‘자연마술’의 시대다. 중세 자연학의 계보를 물려받은 것이다. 17세기는 ‘자연철학’의 시대다. 자연마술을 신비주의로 간주하고 극복해나가는 시대이다. 이 시기에 비로소 근대적 의미의 과학적 사고가 생겨난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과학을 실험과 실증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제시한 사람이다. 데카르트, 홉스, 뉴턴, 라이프니츠와 같은 자연철학자들이 이 시대를 전후하여 과학혁명을 주도해 나간다.
과학혁명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과 같은 이들이 이 혁명을 주도해 나갔지만 실상 그들 역시 이전 시대의 사고에 아주 깊이 천착해 있었다. 허점도 많고 모순도 많다. 조금씩 하나하나 바꿔나갔다고 보면 된다. 이들 모두는 사실 16세기의 자연마술에 깊이 빠져 있었다. 갈릴레오나 뉴턴은 연금술의 신봉자였고, 특히 뉴턴은 30년 동안이나 연금술을 연구했던 사람이다. 자연마술은 아주 오랜 전통을 갖고 있으며, 17세기의 자연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남아있었던 전통이다. 그것은 신비주의도 아니고 미신도 아니다. 16세기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과학’이었다. 보통 천문학에서의 진정한 혁명은 코페르니쿠스가 아니라 케플러가 일궈냈다고 하는데, 이 사람도 자연마술의 신봉자였다.
자연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이 자연 속에 숨겨져 있음을 인정하고 그 힘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력 연구는 나중에 중력의 발견으로 이어지는데 고대부터 자연학의 분야에서 관심을 가졌던 문제이다. 점성술이나 연금술은 자연마술의 전형적인 예이다. 16세기의 델라 포르타는 <자연마술(Magia Naturalis)>이라는 20여권 분량의 책을 썼던, 이 분야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뷔퐁의 <박물지>나 디드로의 <백과전서>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일반 상식에서부터 희귀한 처방법들을 소개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라고 보면 된다. 식물의 품종개량법이나 재배법, 와인과 과일 보존법, 빵 만드는 법, 의학상식, 연금술, 광학, 카메라 옵스쿠라, 렌즈, 자력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다한 지식을 모아놓은 잡학사전 같은 책이다. 내용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으므로 그가 정의한 마술의 개념만 옮겨본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유기체의 기관들처럼 상호의존하고 있으며 자연의 유대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 세계는 거대한 생물과도 같다. 마술은 주문을 통해 초자연적인 현상을 만들어 내거나 반 자연적인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성실하게 보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자연의 기능을 인위적으로 실현하는 것, 거울이나 렌즈로 광학현상을 실험하듯이 자연의 힘을 응용하는 것이 마술이다. 또 하나 자연의 힘을 촉진, 성장시키는 기술이 마술이다. 증류를 통해 자연의 물질에서 순수한 성분을 분리 추출하거나 동식물의 생장을 촉진시키는 것, 잡종이나 접목을 통해 동식물의 품종을 개량하는 것 또한 자연마술에 속한다. 그렇게 보면 자연마술은 근대과학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