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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본문
근대 초기 서양 사람들이 남겨놓은 한국 관련 사진자료를 몇 년간 연구하면서 정작 우리는 서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지 관심이 많았는데, 이승원의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이 출간되어 재미있겠다 싶어 읽어보았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데, 짐작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개항이후 일제강점기가 시작하기 이전까지 한국에 체류했던 이들은 대개 외교 고문, 선교사, 저널리스트, 단순 여행자 등으로 다양하고, 개인만을 놓고 보면 그들이 한국에 대해 가졌던 시각은 비교적 공정한 편이다. 물론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보면 제국주의 논리가 저변에 깔려있고, 우생학적 시각도 강하다. 버드 비숍, 퍼시벌 로웰, 헐버트, 이런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써놓은 책들은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제국주의 국가의 일원이었다. 우생학, 이것은 19세기의 서양을 휩쓸었던 가장 보편적인 지식 패러다임 중의 하나라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사고에 젖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똘레랑스, 관용, 이런 것도 어떤 점에서는 거기에서 나와 개념이 확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의 ‘지식인들’이 서양을 처음 접했을 때는 우선 적응하질 못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어 재미있다. 그런데 이 낯선 문화란 것이 중화사상에 젖어있던 우리 지식인들에게는 그냥 생소하고 이질적인 정도가 아니라 야만적인 것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이 야만적인 낯선 문화를 동경하게 된다. 여기에는 조선의 국권상실, 중국의 추락과 같은 상황의 변화가 중요한 계기가 된다. 중국도 힘 한번 못써보고 맥없이 당해버린 마당에 이제 모든 질서는 서양식으로 재편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은 무조건적인 환대의 대상이 되고 모방 욕구가 발동한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서양에 대해 가졌던 생각은 나라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낯선 서양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당대의 한계였다. 어쨌든 흥미로운 대목이 몇 군데 있어 그 중 하나를 옮겨보자면, 러시아와 미국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인식 차이. 김동환이 사장으로 있던 잡지 <삼천리>에서 1932년에 실시한 설문조사, 제목은 “우리는 아메리카(亞米利加) 문명을 끌어올까, 러시아(露西亞) 문명을 끌어올까?”이다. 일제의 검열 때문에 삭제된 부분이 있는 모양인데, 그래도 정리해보면 대략 이렇다. “홍양명은 철학이 없는 미국 문명보다는 철학이 있는 러시아 문명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했다. (중략) 박희도는 미국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문학적, 예술적으로 계통이 있는 러시아를 본받아야 된다고 말했다. 주요섭의 경우에는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의 장점만 취하자는 논리를 내세웠다. 정치적 이상과 사회생활은 미국을, 교육과 문예와 경제제도는 러시아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재좌는 미국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의 견해는 거의 비난에 가까웠다. 미국은 ‘아메리카니즘’을 상징하는 나라이며, 미국의 문화는 갈 데까지 간 자본주의 말기의 썩어문드러진 문화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러시아의 문화는 일보 전진하는 새로운 형식의 문화라고 안재좌는 생각했다.” 러시아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여기에는 혁명 이후의 러시아에 대한 오해도 섞여있다. 공산주의는 공동생산과 공동분배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여성도 공유한다는 주장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는 공산주의 러시아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던 이들이 만들어낸 악의적인 왜곡이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가졌던 시각 자체가 제국주의자의 그것이었다는 것. 예컨대 러시아, 영국 등에 특명공사로 파견되었던 민영환이 싱가포르에 들러 원주민들과 만났을 때의 인상은 서양 사람들이 조선인들에게 가졌던 인종적 편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더럽고 불결하며, 사람들도 그렇다는 기술이 서양 사람들의 기행문에 종종 등장한다. 민영환의 기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타자의 문화를 자기 시각으로 해석하자면 이런 편견은 한도 끝도 없다. 반대로 서양에 대한 시각은 정반대여서 이미 그에게 서양에 대한 동경, 나아가 동일화의 욕망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대부분의 조선 지식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우호적이면서도 이슬람계나 흑인, 동남아시아쪽 사람들에게는 배타적이거나 무시하기 일쑤인 것이다. 서양의 제국주의와 우생론자들이 퍼뜨려놓은 편견에 우리가 아직도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